
2022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이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한국어 연출작 브로커는 버려진 아기를 둘러싼 이질적인 인물들이 형성하는 '가족의 가능성'을 그린 감성 드라마다. 공식적으로는 불법인 '베이비 박스 브로커'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사회의 이면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고 살아가는지를 섬세하게 탐구한다. 송강호, 강동원, 아이유, 이주영 등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하고도 씁쓸한 여정은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번 리뷰에서는 베이비 박스 소재의 윤리적 딜레마, 비혈연 가족의 감정선, 강동원의 연기 변주와 의미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베이비 박스 소재의 윤리적 딜레마: 선과 악의 경계에서
브로커는 시작부터 관객에게 도덕적 딜레마를 제시한다. 교회 앞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훔쳐, 돈을 받고 불법 입양시키려는 '브로커'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의 행위는 불법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을 단순한 범죄자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아기를 좋은 가정에 보내고 싶다"는 그들의 말에서 관객은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러한 설정은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인간 중심 시선에서 비롯된다. 브로커는 제도와 현실 사이에서 소외된 이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려 하는 과정을 통해 '무엇이 진짜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관객은 법적으로는 옳지 않지만, 인간적으로는 이해 가능한 선택들 앞에서 끊임없이 판단을 유보하게 된다.
특히 영화는 입양과 출산, 생명에 대한 책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매우 섬세하게 다룬다. 주인공들이 아기를 거래 대상으로 보면서도 점차 애정을 느끼고, 그 속에서 가족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혹은 인간다움의 회복을 상징한다. 아이를 버린 엄마 소영(아이유)의 존재 또한 관객의 시선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녀는 왜 아이를 버렸는가? 그녀는 끝내 엄마인가 아닌가?
이처럼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라는 소재를 통해 현대 사회의 윤리적 회색지대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선과 악, 책임과 방임, 가족과 타인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적 온기로 다시 그리는 고레에다 식 사회 비판이 돋보인다.
비혈연 가족의 감정선: 함께한 시간이 만든 유대
영화의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브로커 일행'의 여정은 단순한 범죄 도피극이 아니다. 오히려 가족 여행에 가까운 감정을 만들어낸다. 아기를 입양 보낼 가정을 찾기 위한 과정 속에서, 이질적이고 목적이 달랐던 인물들은 점차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공동체로 변화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줄곧 다뤄온 '가족의 정의'가 여기서도 중심을 이룬다.
상현은 사기와 채무에 시달리지만 아이를 진심으로 아끼는 인물이고, 동수는 과거 고아 출신으로 입양 문제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지닌다. 소영은 범죄의 배경이 있는 인물이지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삶을 재정립하려 한다. 여기에 아기를 관찰하듯 따라다니는 형사 수진(이주영)과 이 형사도 함께 여행을 하며, 이 모호한 ‘가족’의 틀을 완성해간다.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작은 장면들 — 놀이공원에서의 미소, 빗속에서의 대화, 모텔에서의 웃음 등 — 은 강렬한 서사 없이도 이들이 점차 ‘하나의 가족’처럼 변모해감을 보여준다. 법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없고, 처음엔 서로 이용하려 했던 사람들이지만,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형성된 감정은 진짜 가족 이상의 유대를 만든다.
이는 혈연과 법적 관계만이 가족을 정의하지 않는다는 고레에다 감독의 일관된 메시지를 그대로 반영한다. 브로커는 이러한 비혈연 가족의 탄생과 해체 과정을 통해, ‘가족’이라는 개념을 다시 묻고,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품이다.
강동원의 연기 변주와 의미: 절제된 감정 속의 성장
브로커에서 강동원이 맡은 동수는 말수가 적고 과거의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한때 고아원에 있던 경험 때문에 입양에 대해 누구보다 복합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표출하지 않고 속으로 삼키는 캐릭터다. 이처럼 감정의 과잉이 아닌 절제로 표현해야 하는 역할은 배우로서도 도전적인 지점이다.
강동원은 이러한 캐릭터를 억제된 대사 톤, 조심스러운 몸짓, 눈빛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그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가 느끼는 불안, 슬픔, 분노, 후회가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연기를 선보이며, 인물의 감정선을 깊이 있게 구축한다. 특히 아기를 안고 있는 장면들, 소영과 단둘이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그의 ‘침묵 속 감정’이 가장 두드러진다.
동수는 영화 초반에는 단순한 브로커처럼 보이지만, 여정을 함께 하며 누구보다 먼저 감정적으로 변화하는 인물이다. 아기를 위한 진심 어린 선택, 상현과의 우정, 소영에 대한 미묘한 감정 등은 그가 얼마나 인간적인 캐릭터인지 보여준다. 강동원은 이 복합적인 내면을 과장하지 않고, 차분히 쌓아 올려 관객으로 하여금 동수에게 공감하게 만든다.
그의 연기는 극 전체의 정서를 부드럽게 감싸며, 브로커의 서정성과 진정성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전작들에서 보여준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는 다른 얼굴로, 배우 강동원의 스펙트럼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브로커는 단순한 사회 문제 영화도, 감성적인 가족 영화도 아니다. 그것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지고, 그 답을 ‘관계’ 속에서 천천히 찾아간다. 베이비 박스를 둘러싼 도덕적 혼란, 가족의 진짜 의미, 그리고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선택들. 송강호, 강동원, 아이유 모두가 진정성 있는 연기를 펼치며,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정서와 메시지를 훌륭히 전달한다. 복잡하지만 따뜻한 여정을 함께하고 싶다면, 브로커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