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미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국가에 의해 존재를 부정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1968년 청와대 습격 미수 사건(1·21 사태) 이후, 북파공작원을 양성하기 위해 결성된 684 부대. 그들이 훈련받고, 이용당하고, 결국 국가에 의해 제거되는 과정을 영화는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이 글에서는 실미도의 전개 방식, 국가가 내세운 정당성의 붕괴, 그리고 서사의 반전을 통해 드러나는 국가폭력의 구조와 의미를 분석합니다.
1. 실화 기반의 탄탄한 전개, 사건을 극으로 끌어올리다 (사건)
실미도는 684 부대라는 실제 존재했던 조직을 영화적 극화로 재구성합니다. 이 부대는 1968년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 사건 이후 이에 대한 대응조로 조직됐습니다. 특전사 요원도 아닌, 사회의 밑바닥에서 모인 전과자와 사형수들로 구성된 이 집단은,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명분으로 비밀리에 육성되었습니다. 영화는 이들의 삶을 거대한 역사적 사건 속 개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도록 유도합니다. 서사는 인물 소개 → 훈련 과정 → 임무 취소 → 반란 → 집단 사망 순으로 전개되며, 각각의 단계마다 국가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훈련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수준의 폭력이었고, 부대원들은 점차 살기 위한 생존의 본능과 동지애에 기반해 결속합니다. 이후 ‘작전 취소’라는 통보는 단지 임무 실패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경험으로 이어집니다.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팩트의 중심을 흐리지 않으면서도 극적 긴장감을 최대한 끌어올립니다. 카메라 워킹, 음악, 배우들의 몰입감 있는 연기까지 더해져, 실미도는 관객에게 실제 사건처럼 느껴질 만큼의 리얼리티를 부여합니다. 이러한 서사 구성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지워진 존재들을 소환하는 저항의 방식이 됩니다.
2. 정당성이라는 허울, 국가 명령의 모순을 보여주다 (정당성)
영화 실미도가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는 지점은 바로 국가가 내세운 정당성입니다.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든 조직’, ‘국가 안보를 위한 극비 작전’이라는 명목 아래 모든 폭력과 억압이 정당화됩니다. 그러나 영화는 묻습니다. “국가가 한 인간을 도구화하고, 이용한 뒤 제거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684 부대원들은 국가를 위해 싸우겠다는 명분 하나로 존재를 바쳤지만, 국가는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거나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훈련 중 죽어간 동료들, 끝내 작전이 취소된 뒤 ‘제거 대상’으로 낙인찍힌 현실은, 정당성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무책임과 야만성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더 나아가 영화는 '조직된 국가폭력'의 시스템화를 비판합니다. 특정 명령 체계 속에서 사람들은 누군가를 죽이거나 억압하면서도, 책임은 위로 전가되고, 시스템은 아무도 처벌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현대 사회의 국가주의가 얼마나 쉽게 폭력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경고합니다. 또한 작전이 취소된 이후 정부 관계자들이 보이는 태도는, 도덕적 책임감이 아닌 정치적 손익 계산에 치우쳐 있습니다. 이는 영화가 단순한 역사 고발을 넘어,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와 그 속에서 반복되는 정당성의 폭력성까지도 성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3. 뒤바뀐 서사,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반전 (반전)
실미도는 끝을 향해 갈수록 서사의 위치가 역전되는 구조를 취합니다. 초반에는 명백한 피해자였던 684 부대원들이, 서울로 향하며 군과 경찰에 총을 겨누는 순간부터 국가 입장에서 보면 ‘위협적 존재’로 탈바꿈합니다. 하지만 이 반전은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관객에게 “왜 이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구조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러한 서사 전환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국가와 개인의 관계가 얼마나 쉽게 역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국가는 스스로 만든 존재에게 책임지지 않고, 결국 국민의 이름으로 또 다른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눕니다. 이때 관객은 어느 한쪽을 ‘악’이라 단정 짓기 어려운, 복잡하고 모순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684 부대원들이 결국 자폭 혹은 사살당하며 전멸하는 결말은, 서사의 폐쇄성과 역사적 침묵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목소리를 낼 기회도, 진실을 밝힐 공적 장치도 부여받지 못한 채 역사의 음지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 서사는 결국 “국가가 누군가를 쉽게 만들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존재로 규정했을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실미도는 단순한 전쟁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 그리고 정당성이란 이름에 감춰진 구조적 야만성을 드러내는 고발의 서사입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극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연, 책임 있는 국가의 구성원인가?” 이 물음이 바로 실미도가 던지는 가장 묵직한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