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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누아르의 끝을 보여주다-정치,폭력,타락

by coffeemoney2 2025.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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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수라 포스터 사진

김성수 감독의 영화 〈아수라〉(2016)는 한국 누아르 영화 중 가장 강렬한 작품 중 하나로, 부패한 정치와 권력, 그 안에 갇힌 인간의 타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형사, 정치인, 검찰이 얽혀 있는 지옥 같은 도시 ‘안남시’를 배경으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권력의 썩은 민낯을 드러냅니다. 폭력성과 몰입감, 그리고 냉혹한 연출로, ‘한국형 하드보일드 누아르’의 전형을 제시한 이 작품은 지금 다시 봐도 충격적일 만큼 강한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정치 권력의 타락, 현실보다 잔인한 허구

〈아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패 권력의 실체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영화입니다. 중심 인물 박성배 시장(황정민)은 ‘안남시’라는 허구의 도시를 쥐락펴락하는 절대 권력자입니다. 그의 권력은 단순한 정치적 우위가 아니라, 경찰과 검찰, 조폭까지 휘어잡은 ‘시스템적인 범죄권력’으로 묘사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허구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실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를 보여주며 섬뜩한 느낌을 줍니다. 박 시장은 온갖 부정부패와 폭력을 저지르면서도, 겉으로는 시민을 위한 정치를 외칩니다. 이중적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그의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어온 정치인들의 이중성과 맞닿아 있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실제 정치 현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그가 자행하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지만, 법은 그를 제지하지 못합니다. 영화는 바로 이 점을 통해 ‘정의가 사라진 사회’를 고발하고 있으며, 인간의 윤리가 무너진 공간에서 권력이 어떻게 모든 것을 잠식하는지를 극단적으로 묘사합니다.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박 시장의 얼굴은 인간이라기보다는 ‘괴물’에 가까워집니다. 그는 타인의 생명이나 고통에는 무감각하고, 오로지 자신의 생존과 확장을 위해 움직입니다. 이 모습은 단순히 나쁜 캐릭터를 넘어서, 현대 사회의 구조적 악을 상징하는 존재로 기능합니다. 결국 〈아수라〉가 보여주는 정치는 타락 그 자체이며,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 설정이 아니라, 현실을 기반으로 한 누아르적 진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형사의 타락과 선택의 잔혹함

도입부에서부터 주인공 한도경(정우성)은 이미 부패한 경찰입니다. 그는 박 시장의 사적 살인과 뇌물, 조폭 청부에 동원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이미 정의보다는 생존에 가까운 선택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의 부패는 처음부터 자발적이진 않았지만, 상황과 구조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닌, 시스템 안에서 길들여진 타락을 묘사합니다. 검찰은 그런 한도경의 약점을 쥐고 그를 협박하며 박 시장을 잡으려 합니다. 하지만 검찰 역시 정의의 대변인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권력 추구 집단으로 묘사됩니다. 결국 영화 속 한도경은 양쪽 권력 사이에 끼어 갈 곳이 없는 인물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소모됩니다. 그의 타락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국 자신을 파멸시키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한도경의 감정선은 매우 억눌려 있습니다. 영화 내내 그는 감정을 분출하기보다, 고통을 삼키고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정우성 배우의 절제된 연기를 통해 극대화되며, 관객은 도경의 처절함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그가 저지르는 행동에 경계하게 됩니다. 이 모순된 감정은 ‘선도 없고 악도 없다’는 아수라의 세계관을 정확히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그가 끝까지 버티고자 했던 이유는 오직 가족 때문이었지만, 그조차도 결국 무너집니다. 영화는 그의 선택을 옹호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으며, 다만 한 인간이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부서지고 소모되는지를 냉혹하게 보여줄 뿐입니다. 이는 ‘비극적 누아르’라는 장르의 정수를 담고 있으며, 관객에게 묵직한 후유증을 남깁니다.

폭력 연출과 누아르의 미학

〈아수라〉의 또 하나의 강점은, 폭력 묘사에서 느껴지는 날 것의 질감입니다. 이 영화의 폭력은 스타일리시하거나 영웅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저분하고, 무질서하며, 고통스럽습니다. 칼부림, 총격, 몸싸움 모든 액션은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그 덕분에 관객은 장면 하나하나에 숨이 막히는 긴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영화 후반의 복도 액션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 남을 정도로 혼돈과 공포, 폭력이 극대화된 명장면입니다. 김성수 감독은 액션 장면에서도 인물의 내면과 심리를 놓치지 않습니다. 인물들은 절망 속에서 서로를 해치고, 끝내는 자기 자신조차 해체되는 느낌을 줍니다. 이는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시스템의 잔혹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미장센이기도 합니다. 공간 구성, 조명, 편집 모두가 누아르 장르의 미학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한국적 정서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색채와 음향 연출에서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탁한 톤이 지속되며, 밝은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이는 희망이 사라진 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결과이며, 관객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숨이 막히는 듯한 무력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배경음 또한 감정을 자극하는 대신, 불편한 침묵과 날카로운 소음을 통해 불쾌함과 공포를 증폭시킵니다. 이런 연출 방식은 ‘아수라’라는 제목에 걸맞은 혼돈의 세계를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수라〉는 부패한 정치, 타락한 권력, 무너진 인간성과 시스템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하드보일드 누아르입니다. 선악의 경계가 사라진 세계에서, 모든 인물은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그 끝은 누구에게도 구원이 아닌 절망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절망이, 지금 우리 사회가 바라봐야 할 현실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거칠고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는 누아르의 정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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