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시선’의 정치학을 정교하게 다룬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누가 ‘보는 자’이고, 누가 ‘보여지는 자’인가를 끊임없이 뒤바꾸며 관객에게 시각적, 심리적 충격을 선사합니다. 관음의 시선, 권력 관계, 심리 게임이 겹겹이 얽힌 아가씨는 시선을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권력임을 말해줍니다.
1. 관음적 시선의 구조 – 누가 누구를 보는가
영화 아가씨는 초반부터 누군가를 훔쳐보는 시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백작은 히데코를 감시하며 그녀의 행동을 조종하려 하고, 히데코는 숙희를 경계하면서도 점점 감정적으로 끌립니다. 그러나 이 모든 시선 위에 또 하나의 눈이 있습니다. 바로 ‘관객’입니다. 관객은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관찰하고 탐색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제3자의 시선으로 자리합니다. 이러한 메타적 구조 속에서 아가씨는 관음이라는 테마를 단순한 성적 이미지가 아닌, 권력의 구조로 승화시킵니다. 특히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슬쩍 훔쳐보기, 구멍으로 보기, 틈 사이로 엿보기 등의 장면은 단지 장면 연출이 아닌, 시선을 통제하는 자가 권력을 쥐고 있다는 메타포로 기능합니다. 히데코가 읽는 외설 소설 장면에서는 노골적으로 관음과 권력의 상호작용이 드러나는데, 이때 객석에 앉은 남성 독자들은 쾌락의 소비자일 뿐이며, 히데코는 그들의 시선을 통제하려는 자로 재배치됩니다. 박찬욱 감독은 카메라 시점, 클로즈업, 틸트 업/다운 등 시네마틱 언어를 활용하여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를 ‘보는 방식’ 자체로 암시합니다. 단순히 누드 장면이 있는 영화가 아니라, 누가 누구를 대상화하며 통제하고 있는지를 질문하는 심리적 카메라 플레이가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결국 보는 자는 항상 우위에 있지 않으며, 보는 행위 자체가 되려 통제당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끝까지 암시합니다.
2. 연출 속에서 드러나는 ‘시선의 권력’ – 카메라의 위치
아가씨에서 카메라는 단순히 상황을 기록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 자체로 권력의 방향성과 심리 상태를 드러냅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에서 시점을 끊임없이 전환시키며,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반복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시선을 전복시킵니다. 이는 관객에게 하나의 ‘절대적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암시하며, 시선과 권력의 유동성을 강조합니다. 히데코의 방 안, 욕실 장면, 정원 등 여러 공간에서 카메라는 마치 누군가를 ‘엿보는 듯한 구도’로 배치되며, 관객이 자연스럽게 관음자의 위치에 서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나 중반 이후 히데코와 숙희가 서로를 욕망의 주체로 인식하게 되면서, 시선의 흐름이 완전히 전복됩니다. 더 이상 그들은 ‘보여지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 바라보는 자’로 바뀌며, 이때부터 카메라는 더 이상 몰래 엿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면과 대칭 구도를 통해 ‘주체적 시선’을 강화합니다. 특히 침대 신에서의 카메라 위치는 대표적입니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 포르노그래피가 ‘남성이 여성을 본다’는 구조였다면, 아가씨는 여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구도로 바꿔놓고, 이 과정에서 시선의 주체가 누군지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이 연출은 시각적 쾌락에 머물지 않고, 시선의 윤리와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3. 심리적 시선의 전복 – 감정이 권력을 넘다
아가씨는 시선의 물리적 위치뿐 아니라, 심리적 주도권의 이동을 통해 권력 구도를 뒤바꿉니다. 초반에는 백작이 히데코를 유혹하고, 숙희는 히데코를 속이며 백작의 음모에 가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감정을 갖게 된 숙희와 히데코는 서로를 감시의 대상에서 감정의 주체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이 지점에서 시선은 억압의 수단이 아닌, 해방의 열쇠로 작동합니다. 영화는 히데코가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는 장면에서 큰 반전을 만들어냅니다. 과거 숙모와 함께 외설 낭독을 하던 시절의 트라우마, 백작의 계산된 연기 등 모든 시선은 자신을 도구화하려는 남성 권력의 산물이었음을 인식한 히데코는 더 이상 ‘보여지는 자’로 남지 않습니다. 대신, 스스로를 바라보는 존재로 변화합니다. 그녀의 시선은 숙희를 향하고, 이 시선은 처음으로 무력하거나 수동적이지 않은 감정으로 채워집니다. 이러한 시선의 전환은 단순한 서사의 반전이 아니라, 심리적 권력의 뒤집기입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해방되는 순간, 인물은 더 이상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됩니다. 아가씨는 이 점에서 시선의 윤리와 인간 관계의 심리를 동시에 파고드는 수작으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아가씨는 시선을 통해 권력을 말하고, 시선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드러내는 영화입니다. 단순히 누가 누구를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보는 방식, 보는 위치, 보는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게 권력과 얽히는지를 세심하게 묘사합니다.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화면 속 ‘시선의 방향’에 주목해 보세요. 거기엔 단순한 카메라 이상의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