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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도에게 '"박열"이란?-철학, 사상, 비판정신

by coffeemoney2 2025.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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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 포스터 사진

영화 박열은 단순한 역사극이 아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한 지식인이 삶과 죽음을 걸고 펼쳐낸 철학적 신념과 사상, 그리고 체제에 대한 강력한 비판정신이 응축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생각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자유, 책임, 저항의 의미를 되짚는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박열은 사유와 실천의 연결을 보여주는 실례이자, 철학과 윤리를 영화라는 매체로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본 글에서는 박열의 철학, 사상, 비판정신을 중심으로 영화를 분석하고, 인문학적 해석을 통해 그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박열의 철학: 무정부주의적 인간관

박열은 단순한 반체제 인물이 아닌, 자신만의 철학 체계를 가진 사상가였다. 그는 ‘무정부주의자’임을 공공연히 밝히며, 제국주의와 국가 권력의 존재 자체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견지했다. 이때의 무정부주의는 단순한 폭력성이나 혼란을 의미하지 않는다. 박열이 주장한 무정부주의는 ‘진정한 인간 해방’과 ‘자율성의 회복’을 지향하는 깊이 있는 철학이었다. 그는 일본 제국이 만들어 놓은 질서, 법, 언론, 도덕 등 모든 체계가 기득권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러한 체계에 순응하는 것은 도덕적 타락이며,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저항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 속 박열은 일관되게 자신의 철학을 관철한다. 일본 경찰에 체포될 때도, 법정에서 사형을 구형받을 때조차 두려움 없이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는 기존의 정의 개념을 전복시키고, 법이라는 외적 권위에 의해 강요되는 윤리를 거부하며, 개인의 내적 윤리에 기반한 정의를 주장한다. 이는 칸트의 '선의지' 개념과도 연결된다. 외부로부터 부여된 의무가 아닌, 이성에 기반한 자율적 결단이 진정한 도덕 행위라는 철학은 박열의 행동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또한, 박열의 철학은 실존주의적 색채도 내포하고 있다. 그는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존재로서 자신을 위치시킨다. 이러한 태도는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적 주체성과도 닿아 있으며, 단순한 이념 수용이 아닌, 자신의 실존적 조건 속에서 철학을 ‘살아내는’ 자세를 보여준다. 박열의 무정부주의는 이론적 선언이 아니라, 철학과 삶이 하나가 된 실천 그 자체였다. 인문학도로서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철학이 단지 학문이 아닌 삶의 태도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박열의 사상: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

박열은 단지 민족주의적 독립투사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그는 식민지 지식인이자 국제적 사상을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하며, 실천으로 옮긴 드문 사례다. 그가 지닌 사상의 중심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회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화 박열은 박열이 단순히 일본에 저항한 조선 청년이 아닌, 무정부주의, 평등주의, 계급 해방 사상 등 다양한 지식 체계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지식인으로 조명한다. 그는 니체, 마르크스, 바쿠닌 등 당시 유럽 사상가들의 저작을 섭렵하고,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맞게 이 사상들을 실천적 언어로 재구성한다. 단지 서구 사상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겪는 억압과 시대의 부조리를 분석하는 도구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박열은 주체적인 사상가로 평가된다.

그의 글과 발언은 단호하고 날카롭지만, 감정적 분노에 치우치지 않는다. 오히려 구조적 모순을 정확히 짚어내며, 그것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가령 그는 일본의 근대화가 ‘제국주의와 식민지 수탈’ 위에 세워졌다고 비판하며, 이러한 체제는 필연적으로 인간성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특히 그의 사상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가네코 후미코와의 관계는 단순한 애정이 아닌, 사상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평등한 동지 관계였다. 이는 가부장적 사회 구조를 넘어서려는 박열의 내면적 성찰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권력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억압 구조 전반을 의심하고 균열을 내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상적 깊이를 이해하고 사유의 방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박열은 단지 외치는 사람이 아닌, 사유하는 행동가였다.

박열의 비판정신: 체제에 대한 실존적 저항

영화 박열이 주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그가 권력에 맞서 죽음을 선택하면서까지 진실을 말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의 저항은 단순한 감정적 분노가 아닌, 체제 자체의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철저한 인식에서 출발했다. 박열은 법정에서 “나는 조선인의 명예를 위해 죽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는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억압받는 민족의 인간성과 존엄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전략적 행위였다.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적 선택과 책임의 개념은 박열의 행위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간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이며, 그 선택에는 필연적으로 책임이 따른다. 박열은 그 선택을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감당했다. 또한 그의 저항 방식은 단순한 외부 탈출이 아니라, 체제 내부에서의 철저한 논리적 비판과 윤리적 도발이었다. 그는 자신이 처한 법정이라는 제국의 중심 무대에서 체제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그 허위를 조롱함으로써 ‘내부 붕괴’를 유도했다. 그의 비판정신은 현대 사회에도 유효하다. 제도와 권력이 가진 구조적 문제를 비판할 수 있는 용기, 윤리적 실천으로 연결되는 행동이 바로 박열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인문학은 질문하고 비판하며, 불의에 저항하는 학문이다. 그 관점에서 보면, 박열은 그 누구보다 ‘실천적 인문학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박열은 시대를 초월해 진정한 인문학적 가치, 즉 자유, 저항, 실천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텍스트다. 이 영화를 통해 인문학을 공부하는 우리는, 생각만 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어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박열의 철학과 사상, 그리고 비판정신은 지금 우리의 삶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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