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지금 "말모이"가 필요한 이유-언어정체성, 세대공감, 교육

by coffeemoney2 2025. 10. 22.
반응형

영화 말모이 포스터 사진

영화 말모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의 ‘우리말 사전 만들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단순한 과거사가 아닌, 오늘날 언어 정체성의 의미와 세대 간의 문화 이해, 그리고 교육 현장에서의 언어 감수성을 되새기게 만드는 작품이다. 지금 우리가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닌, 우리의 정신과 문화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언어정체성: '말'은 곧 '사람'이다

말은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사고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틀이다. 언어는 곧 정체성이고, 민족의 정신이며,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영화 말모이는 이러한 언어의 본질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일제강점기, 조선어 말살 정책이 가속화되던 시기에 조선어학회가 감행한 사전 편찬 작업은 단순한 출판 프로젝트가 아니라, ‘말’을 통해 ‘사람’을 지키려는 문화적 저항이었다.

작품 속 인물 류정환은 문맹에 가까운 인물로 등장하지만, 조선어학회의 일을 하면서 점차 언어의 깊이를 깨닫는다. 그가 처음에는 생계를 위한 방편으로 시작했던 일이, 후반부에는 조선말을 지키기 위한 사명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관객은 언어가 한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체험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역사적 관심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언어 정체성이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외래어와 신조어의 범람, 비속어의 일상화, AI 시대의 축약된 언어 환경은 우리말의 고유한 감성과 맥락을 흐리게 만든다. 특히 디지털 세대는 단순하고 편리한 언어를 선호하지만, 그 속에서 뉘앙스와 감정, 역사적 맥락은 사라지기 쉽다.

말모이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언어로 생각하고 있는가? 그 말은 당신을 온전히 표현하고 있는가?" 언어의 가치와 정체성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 영화는 지금 시대에 더욱 절실하다. 말은 존재의 증거이며, 정체성의 뿌리다. 말이 사라지면, 결국 사람도 사라진다.

세대공감: 공통언어로 엮이는 기억의 고리

영화 말모이는 한 세대의 언어가 다른 세대와 어떻게 연결되고, 나아가 사회 전체의 정서적 공동체를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언어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세대 간의 기억을 공유하고, 경험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영화 속 사전 ‘말모이’는 단어를 모은 책이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시대와 지역, 계층의 사람들이 쓰던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곧 ‘말’이 곧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내포한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 단어, 부모 세대가 자녀에게 남기는 고유한 표현, 또는 지역 방언 속에 담긴 정서—all 이 언어라는 끈을 통해 한 사회의 문화적 유산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고리가 점점 약화되고 있다. 디지털과 모바일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은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언어의 ‘공감력’은 떨어진다. 줄임말, 신조어, 표정 이모지 등은 편리하지만 감정의 깊이나 뉘앙스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 그 결과 세대 간 의사소통은 단절되고, 문화적 소속감 역시 흐려진다.

말모이는 이러한 상황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영화 속 조선어학회는 단어를 모으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사람들의 입에서 쓰이는 실제 언어를 수집한다. 그것은 단순한 취재가 아닌, 민중의 삶 속에서 언어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다. 각 단어에는 그 지역 사람들의 역사, 생활, 감정이 스며 있고, 사전은 그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그릇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의 뜻뿐만 아니라, 그 말이 쓰였던 자리와 마음을 함께 기억하는 태도다. 그것이 세대를 잇고, 문화를 계승하는 진정한 의미다. 말모이는 언어가 연결의 도구가 아니라 ‘공감의 축적’임을 일깨우는 영화다. 말로 이어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교육: 사전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치는 일

교육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돕는 과정이다. 영화 말모이는 이를 언어 교육을 통해 명확히 보여준다. 조선어학회가 사전을 만들던 시기는 일제가 조선말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어만을 강요하던 암흑기였다. 그 속에서 이들은 단순히 단어를 기록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말’을 통한 자존감을 물려주려 했다.

주인공 류정환은 아들과의 관계에서 큰 변화를 겪는다. 문맹이던 그는 사전을 만들며 글을 배우고, 그 글로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이는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인간적 회복이다. 그에게 글과 말은 가족과 다시 이어지는 연결고리이며, 동시에 자존을 찾는 수단이다. 영화는 이를 통해 언어 교육의 본질이 ‘사람’을 중심에 둔 감성적 교육이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오늘날의 교육 환경에서는 여전히 ‘국어’가 시험 과목으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문법을 외우고, 비문학을 분석하며, 작품 해설을 암기하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그런 교육은 말이 가진 인간적 측면—즉 감정, 정체성, 역사—를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말모이는 언어 교육이 곧 인성 교육이며, 문화 교육임을 강조한다. 한 단어의 유래를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시대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자신이 어떤 언어 환경에서 살아가는지를 성찰할 수 있다.

진정한 교육은 사전 속 정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말이 가진 깊이와 맥락, 그리고 사람 사이의 의미를 함께 가르치는 일이다. 말모이는 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것은 곧 그 아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일이다.

말모이는 과거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현재를 위한 언어철학을 품고 있다. 언어 정체성의 회복, 세대 간 공감의 다리, 교육의 본질을 되새기는 이 영화는 지금 우리가 반드시 다시 봐야 할 이유를 충분히 제공한다. 말이 모이면, 결국 사람이 모인다.

반응형